국민 눈높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다보면, 언뜻 보면 맞는 말 같지만, 틀린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의문을 표시하기도 애매한, 그런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별 말을 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가야 할 것 같지만, 뭔가 이상한 그런 경우 말이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임명되기 전 후보자일 때, 전수안 전 대법관이 페이스북에 지지글을 올렸다. 각 신문이 그 글을 기사로 전하였는데, 전체 글 중에서 "강원도 화천의 이발소집 딸이 지방대를 나와 법관이 되고 오랫동안 부부법관으로 경제적으로도 어렵게 생활하다가, 역시 최우수 법관이었던 남편이 개업하여 아내가 재판에 전념하도록 가계를 꾸리고 육아를 전담하고 하여 법원에 남은 아내가 마침내 헌법재판관이 되는 것이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난다고 누가 단언하는가"라는 글이 있었다. 이 글이 그러했다. 뭔가 당혹스러운.
헌법재판관이 되기 위한 자격요건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법률 전문성이 중요한 요건이라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따라서 "법원 밖에서는 제대로 모를 수도 있으나, 서울중앙지법 초임판사 시절부터 남다른 업무능력으로 이미 평판이 났다", "대법관들 사이에, 사건을 대하는 탁월한 통찰력과 인권감수성, 노동사건에 대한 전문성을 평가받고 공인받았다", "이례적으로 긴 5년의 대법원 근무가 그 증거"라는, 전수안 전 대법관의 글에는 이의가 없다. 법원 밖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으므로, 내부사정을 잘 아는 전 대법관이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법률 전문성을 옹호글을 올리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천의 이발소집 딸이 지방대를 나와 법관이 되었고, 최우수 법관이었던 남편이 개업하여 아내가 재판에 전념하도록 가계를 꾸리고 육아를 전담하였다는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청문절차에서 남편과 관련해서 문제가 된 것은, 족집게처럼 주식투자를 하여 많은 돈을 번 부분이다. 그 남편의 주식투자 성공이 액수 및 시기 등에 비추어 이례적인 것도 사실이고, 수익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그 부분을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면 된다.
개인이 합법적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다면, 그것이 십억이든, 백억이든 문제될 것이 없다. 회사원이 투자하니까 정당하고, 변호사가 투자하니까 부당한 경우란 있을 수 없다. 법관의 배우자가 투자하였다고 하여 문제삼을 수는 더욱 없다. 문제는 주식투자 자체의 적정성이고, 그 투자의 적정성만 밝혀지면 된다. 그런데 이발소집 딸, 지방대, 최우수법관인 남편의 육아 전담 등은 이와 동떨어진 사항이다. 이발소집 딸이라고 하여, 지방대를 나왔다고 하여, 국민이 헌법재판관의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지금까지 그런 경우도 없었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요소가 헌법재판관의 자질과 관련성도 없다. 부자라고 하여, 또는 명문대를 나왔다고 하여 헌법재판관이 될 수 없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이다. 마찬가지로 지방대를 나왔다고 하여, 최우수법관인 남편이 육아를 전담하였다고 하여 헌법재판관이 된다면, 이것도 잘못이다. 이러한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헌법원리이기 때문이다(헌법 제11조). 부자든 가난하든, 서울이든 지방이든, 육아를 전담하든 하지 않든, 배우자 경력이 좋든 나쁘든, 그러한 사회적 신분 등으로부터 독립해서 헌법의 가치와 이념에 입각하여 헌법재판을 할 수 있으므로 헌법재판관이 되는 것이다.
전수안 전 대법관의 글도 단순히, 지방대를 나왔으니까, 휼륭한 남편이 육아에 전념하였으니까 헌법재판관이 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청문절차에서 의문이 제기된 것은 주식투자의 적정성 부분이었다. 배우자가 누구인지, 학교를 어디 나왔는지 여부에 따라 그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명문대든 지방대든 주식투자를 위법하게 하였다면, 잘못인 것이고, 그 판단에서 출신배경이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그런데 전수안 전 대법관의 글은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출신 등 배경으로 인하여 주식투자 부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들린다. 더 깊은 뜻이 있을 수도 있으나, 아무런 부연설명이 없어서 당혹스럽다.
부자이니까 나쁜 것인가? 부자로서 갑질을 하니까 나쁜 것인가? 지방대를 나와서 훌륭한 것인가? 지방대를 나와서 많은 차별을 뚫고 성공했으니까 훌륭한 것인가? 헌법재판소 재판관 뿐만 아니라, 법원과 검찰, 변협, 학계에서 묵묵히 헌법과 법률의 길을 가는 많은 분들이 있다. 모두 이런저런 가치관과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헌법과 법률 앞에서는 그러한 배경과 가치관에서 독립해서 판단한다. 법원에서, 부자이든, 가난하든, 어느 학교를 나왔든, 패소인 것을 패소라고 하고, 유죄인 것을 유죄로 인정할 때, 이를 가리켜 국민은 공정하다고 하며, 그 분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한 판단이 뒤틀렸을 때, 국민은 사법을 불신하고, 비난한다. 그러한 불신과 비난이 정당하다면, 이를 해명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야 하는 것이지, 오히려 그러한 불신과 비난이 잘못되었다고 해서는 안 된다.
2019. 4. 21.